사진갤러리 정비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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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5-04-25 14:17 조회38회 댓글0건본문
사진갤러리 정비 공지
사진갤러리 관련 공지입니다.
현재 홈페이지 열린 마당에 게시되어있는 갤러리의 사진은 주변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로 게시가 되어 시각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메인 화면의 사진을 제외한 갤러리에 있는 사진을 삭제하고 새로운 사진을 각 문중으로부터 제출받아 게시코자 합니다.
각 문중에서는 성묘 등의 행사 때 주변 정비 후 깔끔한 사진을 촬영하여 사진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제출하여 주시면 검토하여 갤러리에 게시토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작업이 곧 조상에 대한 위대함을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자료 제출 형식 예시)
금성나씨 충효열정려(錦城羅氏 忠孝烈旌閭)
금성나씨 삼강문
· 열녀 참판공 휘 덕전의 처 정부인 옥천설씨
· 효자 휘 봉서
· 충신 계봉공 휘 통서
· 열녀 창의사공 휘 준서의 처 공산이씨 등의 충, 효, 열의 뜻 을 기리는 정려각 임.
* 충신 계봉공 휘 통서, 효자 휘 봉서, 열녀 휘 덕전의 처 옥천설씨· 준서의 처 공산이씨를 기리는 정려각.
삼강문 현황
· 지정종목: 문화재자료(조선시대 정려각)
· 지정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8호(1985.2.23.)
· 소 재 지: 전남 장성군 삼서면 우치리 295-2
내용설명
· 나씨(羅氏)가 세세(世世)로 서울의 외(外)에 살고 있으면서 명현(名賢)과 절의(節義)가 서울의 내(內)에 살고 있는 분들보다 오히려 지나친 바가 있으니,
참판공(參判公)나 덕전의 부인 옥천설씨(玉川薛氏)는 남편의 병환에 이른 밤부터 새벽에 이르기까지 잠들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함에 노끈 줄로 손바닥을 꿰어 달고 고달픈 졸음을 견디어 가며 이슬 속에서 밤새도록 하늘에 병이 낫기를 빌었고,
남편의 상(喪)을 당했을 때는 머리도 빗지 아니하고 얼굴도 씻지 아니하며 종신(終身)토록 흰 수건을 무릅 쓰고 하늘을 보지 아니하였으며,
강 수은(姜睡隱) 항(沆)이 오백명(五百名)의 유생(儒生)들을 거느리고 궁궐문(宮闕門) 앞에 이르러 인재(人材) ①천발(薦拔)을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그 참판공(參判公)의 아들 진사(進士)인 봉서(逢緒)가 등용(登用)에 뽑혀 사은숙배(謝恩肅拜)를 올릴 때 임금께서 그 단아한 용모를 아름답게 여겨 매월당(梅月堂)이라는 아호(雅號)를 내린 바 있으며,
① 인재를 발탁하여 천거함
어버이가 병환(病患)이 났을 때 구호(救護)의 정성으로 설분(渫糞)을 맛보아 병세를 살피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넣어 연명(延命)토록 하였으며 이러한 내용이 권 문순공(權文純公)상하(尙夏)와 윤병계공(尹屏溪公) 봉구(鳳九)의 장(狀)과 신성재공(申省齋公)의 선행록(先行錄)과 해동삼강록(海東三綱錄)에 기록되어 있으며,
차자(次子)인 통서는 여러 차례 군수직(郡守職)을 맡아 가는 곳마다 유애(遺愛)의 풍(風)을 남겼으며 이미 권무시(勸武試)에 올라 선전관(宣傳官)의 행직(行職)으로 있다가 광해시(光海時)에 이르러 관직을 물리쳐 버리고 출사(出仕)하지 아니 하였고,
병자호란(丙子胡亂)에는 의병을 모집하여 왕실(王室)을 구원(救援)하려 나갔다가 남한산성의 비보(悲報)를 듣고 분원(怨)을 이기지 못하고 병을 얻어 졸(卒)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이 송승선(宋承宣) 병옥(秉玉)과 기송사(奇松沙) 우만(宇萬)의 금성나씨사요(錦城羅氏史要) 장(狀)과 무영(武靈) 삼강록(三綱錄)에 기록되어 있으며 인조조(仁祖朝) 때에 정려의 명을 내렸다.제 삼자(三子)인 준서의 부인 공산이씨(公山李氏)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뽑아 위극(危極)에 빠진 남편을 소생(延生)케한 열행(烈行)이 있어 인조조(仁祖朝) 때에 미곡(米穀)을 주고 포상(賞)을 내렸으니 이와 같은 모든 일들이 나씨 가문에 충효열(忠孝烈)의 정려문(産閭門)을 짓게 된 연유(緣由)인 것이다.
아!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②이륜(彛倫)의 도(道)를 행한 것은 ③천작(天爵)을 얻은 것이요 조가(朝家)에서 포상(褒賞)을 하고 사림(士林)들이 숭보(崇報)를 한 것은 인작(人爵)이 저절로 이르러 오게 된 것이다.
②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③ 하늘이 내린 벼슬
나씨 가문에 일충(一忠)과 일효(一孝) 이열(二烈)의 ④탁락(卓犖)함이 있어 가서(可書) 할만한 것은 이 어찌 천작(天爵)의 양귀(養貴)함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④ 두드러지게 뛰어남
그토록 천리(天理)밝히고 인심을 착하게 하고 ⑤강상(綱常)을 붙잡고 ⑥서질(叙秩)을 돈독히 한 공이 어찌 크고도 중하다 아니 하리오,
⑤ 삼강과 오상의 줄임말로 삼강오륜을 말함. ⑥ 사람간의 관계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나라에서 예법을 잃어버린다면 재야인(在野人)에게 구(求)해야 한다 하였은즉 이제 나라에 삼강의 도가 밝지 못하니 나는 장차(將次)나 씨의 가문에서 구해야 할 것 같다.
세(歲) 기미년(己未年) 시월(十月) 망일(望日)에 통정대부(通政大夫) 행일성록편집관(行日省錄編輯官) 겸 전라도순안어사(兼 全羅道巡按御史) 완산(完山) 이승욱(李承旭) 기(記) 지(知) ⑦경연사(經筵事) 해평(海平) 윤 용구 서(書) 성균관전의 곡부(曲阜) 공 연웅 역(譯)
⑦ 어전에서 경서를 강의하던 일.
송재사우
위 치 : 전남 나주시 문평면 문평로 103-11
송재사는 조선 중기 대사헌을 지내신 문신 나 세찬(1498-1551)의 학덕과 충의를 기리기 위해 최신(崔信) 등 호남 유림의 건의로 숙종 대왕 1702년에 세운 사당이다. 이후 제주목사 금호 임 형수(1504-1619)와 거북선을 제조하신 체암 나 대용(1556-1612)을 추배 하였다.
1868년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24년 복설하여 1925년 사담 나 덕원(1548-?), 창주 나 무송(1577-1653), 구화 나 무춘(1580-1619)의 금성나씨 3인을 추배하여 모두 6인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2월 중 정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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